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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자원 확보전 격화 속 멈춰 선 한국… ‘대왕고래’ 정치 논리에 발목

최근 전 세계 주요국과 에너지 기업들이 국가 안보를 내세우며 자원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스페인의 다국적 에너지 기업 렙솔(Repsol)이 미국 정부의 제재 유예 조치(일반 라이선스)를 적극 활용해 베네수엘라 정부 및 국영 석유회사(PDVSA)와 페트로키리키레(Petroquiriquire) 유전 운영권을 되찾는 협정을 맺은 것이 대표적이다. 발 빠르게 산유량 확대에 나서는 글로벌 흐름 속에서 유독 한국의 해저 탐사 사업만 정치적 공방에 휩쓸려 길을 잃은 모양새다.

거침없는 중국과 일본의 해양 자원 싹쓸이

주변국들의 행보는 매섭다 못해 위협적이다. 자원 확보를 국가 최우선 과제로 삼은 중국과 일본은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며 해저 생태계를 파고들고 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해외 원유 생산 실적이 전무했던 중국은 매년 수십조 원을 시추에 쏟아부으며 어엿한 산유국 반열에 올랐다. 누적 시추 횟수만 5만 번에 이른다. 그 결과 주요 국영 석유 기업(CNPC·시노펙·CNOOC)들은 2024년 기준 석유 총소비량의 43.5%, 천연가스의 무려 70%를 자급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자원을 위해서라면 국가 간 분쟁도 불사한다. 한중 해상 경계가 확정되지 않아 자원 개발과 어로 행위가 엄격히 금지된 서해 잠정조치수역(PMZ)에서조차 2009년과 2015년에 몰래 시추공을 뚫고 탐사를 감행했다. 우리 정부는 지난 6월에야 이를 뒤늦게 파악했다.

일본 역시 잰걸음을 치고 있다. 2010년 23.1%에 불과했던 석유·가스 자주 개발률을 2020년 40%까지 끌어올린 데 이어, 2030년 50% 달성을 목표로 정부가 직접 나서 기업들의 투자를 독려하고 있다. 이에 발맞춰 일본 에너지 기업 석유자원개발(JAPEX)은 탐사 및 생산 부문을 최우선 투자처로 지정했고, 최대 자원 개발사 INPEX는 인도네시아 동자바 해역 탐사권을 거머쥐었다. 자주 개발률이 고작 10.7% 언저리에 맴돌고 있는 한국의 처지와 뚜렷하게 대비된다.

정쟁에 희생된 대왕고래 프로젝트

글로벌 각축전이 벌어지는 사이 한국의 상황은 암담하다. 해저 석유 및 가스 탐사는 철저히 정치적 논쟁거리로 전락해 버렸다. 여당에서는 대왕고래 프로젝트를 향해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거친 비난을 쏟아낸다. 작년 말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했던 더불어민주당이 여당 자리를 꿰찬 지금, 사업을 바라보는 정치권의 부정적 기류는 한층 짙어졌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탐사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치면서도 여론을 의식해 잔뜩 몸을 사리고 있다. 한국석유공사가 2차 탐사를 위해 진행한 국제 입찰에 세계적인 석유 메이저 기업 영국 BP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과거 사업 추진 과정의 불투명성을 확실히 짚고 넘어가겠다며 감사 등을 이유로 승인을 미루고 있다. 글로벌 기업조차 충분한 가능성을 보고 뛰어들었음에도 내부 갈등 탓에 사업 전체가 이른바 ‘올 스톱’ 상태에 빠진 것이다.

자원 탐사는 실패를 먹고 자라는 미래 전략

본래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전임 문재인 정부 시절 김동섭 전 석유공사 사장의 주도하에 시작된 ‘광개토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2031년까지 동해에 시추공 24개를 뚫어 서울 면적의 28배(1만7000㎢)에 달하는 해역을 훑겠다는 계획이다. 기존 가스전보다 4배 큰 규모의 신규 가스전을 찾아내고, 가스를 빼낸 빈 공간에는 공장에서 배출된 탄소를 묻어두겠다는 웅장한 친환경 에너지 안보 청사진이 담겨 있었다. 이번에 시추에 실패한 대왕고래는 자원 매장 확률이 높다고 분석된 7개 유망 구조 중 첫 번째 시도였을 뿐이다.

자원 개발 분야의 전문가들은 탐사라는 작업 자체가 원래 실패를 전제로 하는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강천구 인하대 초빙교수는 단 10%의 가능성만 보여도 시도하는 것이 자원 개발이라며, 시추를 멈추는 순간 성공 확률은 완전히 ‘0%’로 수렴한다고 꼬집었다. 대왕고래 사업의 절차적 문제를 규명하는 것은 마땅히 거쳐야 할 과정이지만, 이전 정부에서 시작한 일이라는 이유만으로 국가 미래 생존이 걸린 자원 확보 시도 자체를 적폐로 몰아가거나 위축시켜서는 안 된다는 매서운 경고다.

By 윤은서 (Yoon Eun-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