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자산 시장이 최근 4주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며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인공지능(AI) 기술이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한 불확실성과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향후 행보를 둘러싼 우려가 겹치며 투자 심리가 급격히 냉각된 탓이다. 이러한 시장의 변동성은 비트코인을 주요 자산으로 보유한 일명 ‘트레저리 기업’들의 주가까지 끌어내리며 연쇄적인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복합적 악재에 짓눌린 가상자산 시장
최근 비트코인 가격은 기술주와의 동조화 현상을 보이며 미 증시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특히 뉴욕 시장에서는 한때 3.2%가량 급락하며 6만 6604달러 선까지 밀리는 등 불안한 장세를 연출했다. 연초 이후 비트코인은 약 12.8%, 이더리움은 24.8% 가까이 하락하며 전반적인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2일 오전 기준 7만 6000달러 선에서 거래되기도 했으나, 8만 달러 선 붕괴 이후 약세 흐름이 지속되는 모양새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하락장의 주요 원인으로 AI 산업에 대한 회의론과 거시경제적 불확실성을 꼽는다. 월가에서는 대규모 AI 투자가 단기간 내에 수익으로 연결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확산되면서 기술주 변동성이 커졌고, 이것이 위험자산인 가상자산 시장으로 전이됐다는 분석이다. 노엘 애치슨 ‘크립토 이즈 매크로 나우’ 저자는 “전통 금융기관들의 가상자산 채택이 늘고 있음에도 가격에 반영되지 않는 현상이 시장의 우울한 심리를 대변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투자자들의 공포 심리를 나타내는 크립토퀀트의 공포·탐욕 지수는 100점 만점에 10점(극단적 공포)까지 떨어지며 얼어붙은 투심을 여실히 드러냈다.
차기 연준 의장 지명과 엇갈리는 전망
차기 연준 의장으로 거론되는 케빈 워시의 성향 또한 시장의 변수가 되고 있다. 워시가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 성향을 가진 인물로 평가받으면서, 그의 취임 이후 금리 인상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위험자산 기피 심리를 부추기고 있다는 해석이다.
반면 일각에서는 워시가 ‘친(親) 가상자산’ 행보를 보일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내비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워시는 과거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을 “정책 입안자들의 판단을 돕는 중요한 자산”이라고 평가했으며, 암호화폐 스타트업에 투자한 이력도 있다. 마이클 세일러 스트래티지 회장 역시 자신의 소셜미디어(X)를 통해 “케빈 워시는 연준의 첫 친 비트코인 의장이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트레저리 기업’들의 주가 약세와 자금 조달 난항
가상자산 가격 하락은 비트코인을 대량으로 보유한 기업들에게 직격탄이 됐다. 세계 최대 비트코인 보유 기업인 스트래티지의 주가는 최근 큰 폭으로 하락하며 지난해 4월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비트마인 역시 주가 부진을 겪으며 며칠 새 15% 넘게 하락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마이클 세일러 회장은 비트코인의 상징색인 오렌지를 언급하며 “더 많은 오렌지(More Orange)”라는 글을 게시해 추가 매입 의지를 시사했다. 그러나 현실적인 여건은 녹록지 않다. 코인데스크는 스트래티지의 주가가 주당 150달러 아래로 떨어지면서 시장가매출(ATM) 방식의 자금 조달 여력이 줄어들었고, 영구 우선주 또한 액면가 이하로 거래되고 있어 대규모 추가 매입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기관들의 엇갈린 행보와 향후 전망
기관 투자자들의 자금 흐름 또한 심상치 않다. 지난주 미국 상장지수펀드(ETF)에서는 약 3억 6000만 달러가 빠져나가며 4주 연속 순유출을 기록했다. 흥미로운 점은 대학 기금들의 포트폴리오 조정이다. 블룸버그 분석에 따르면 하버드대학교는 최근 분기보고서에서 비트코인 ETF(IBIT) 보유량을 줄인 반면, 이더리움 ETF(ETHA)를 신규 편입하며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시도했다. 반면 다트머스대학교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비중을 모두 늘리며 가상자산에 대한 장기적 신뢰를 보였다.
향후 시장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폴 하워드 윈센트 이사는 연준 회의록보다는 관세 관련 미 대법원의 판결이 시장에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기술적 분석 측면에서는 6만 달러 선이 중요한 지지 라인으로 거론된다. 로빈 싱 코인리 CEO는 “6만 달러 지지선이 무너질 경우 5만 달러 대까지 급격한 조정이 올 수 있다”며 거시경제적 불확실성이 해소되기 전까지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