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미술계는 과거 거장들의 작품을 둘러싼 새로운 주장과 발견으로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걸작으로 꼽히는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속 모델의 신원에 대한 새로운 가설이 제기되었으며, 동시에 위작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작품 세계를 총정리하는 대규모 프로젝트가 공개되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베르메르의 뮤즈,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후원자의 딸이었나
1665년경에 제작된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수 세기 동안 그림 속 소녀의 정체에 대한 수많은 추측을 낳았습니다.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모델이 페르메이르의 딸 마리아이거나 집안의 하녀였을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게 받아들여졌습니다.
하지만 영국의 저명한 미술사학자 앤드루 그레이엄딕슨은 최근 ‘선데이 타임스’를 통해 이러한 통념을 뒤집는 새로운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는 그림의 소유주가 페르메이르의 주요 후원자였던 피터르 클라스 판 라위번과 그의 아내 마리아 드 크노이트 부부였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그레이엄딕슨은 페르메이르가 후원자에게 전달할 작품에 자신의 딸을 모델로 세웠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그림 속 소녀의 나이가 약 12세로 추정된다는 점을 근거로, 당시 비슷한 나이였던 후원자 부부의 딸 ‘마그달레나 판 라위번’이 가장 유력한 후보라고 지목했습니다. 1655년에 태어난 마그달레나는 그림이 그려질 당시 12세 전후였으며, 이는 소녀가 세례를 받고 교회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시기와 일치합니다. 따라서 이 그림은 딸의 중요한 통과 의례를 기념하기 위해 주문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모딜리아니 작품 시장, 수십 년 연구 끝에 새로운 기준 마련
페르메르 작품의 숨겨진 이야기가 밝혀지는 가운데, 또 다른 거장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작품 세계 전체를 재정립하는 중요한 움직임도 포착되었습니다. 세계적인 메가 갤러리인 페이스(Pace)는 이달 말 열리는 ‘아트 바젤 파리’에서 모딜리아니의 1918년 작품 ‘마카롱과 함께 있는 젊은 여인(Jeune fille aux macarons)’을 약 1,000만 달러에 출품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번 출품은 단순한 작품 판매를 넘어, 수십 년에 걸쳐 진행된 모딜리아니 작품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 결과물인 ‘전작도록(catalogue raisonné)’의 출간을 예고하는 신호탄입니다. 모딜리아니 학자인 마르크 레스텔리니가 집필한 이 전작도록은 오는 3월 예일대학교 출판사를 통해 출간될 예정이며, 페이스 갤러리는 이를 기념해 2026년 뉴욕에서 심포지엄을, 2027년에는 대규모 전시를 개최할 계획입니다.
페이스 갤러리의 CEO 마크 글림처는 “레스텔리니의 전작도록은 모딜리아니 연구의 결정판일 뿐만 아니라, 모든 전작도록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다”며, “그의 선구적인 방법론과 과학 기술의 도입으로 총 424점의 진품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위작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것인가
모딜리아니의 작품 시장은 오랫동안 진위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왔습니다. 그가 작품 판매나 증여 시 기록을 남기지 않는 경우가 많아 위작이 유통될 여지가 컸기 때문입니다. 2015년 그의 작품 ‘누워있는 나부(Nu couché)’가 크리스티 경매에서 1억 7,040만 달러에 낙찰되는 등 높은 가격에 거래되면서 위작 제작의 유혹은 더욱 커졌습니다.
레스텔리니의 연구는 1985년에 시작되었으며, 신중한 소장가들을 설득해 과학적 감정과 적외선 촬영을 진행하는 등 험난한 과정을 거쳤습니다. 특히 초기 연구를 지원했던 빌덴슈타인 연구소와의 법적 분쟁을 겪기도 했지만, 분쟁이 해결되고 마침내 전작도록 출간이 임박하면서 시장의 불확실성이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번에 출간될 도록에는 박물관 소장품 절반을 포함해 약 100점의 새로 인증된 작품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져, 모딜리아니 시장이 다시 활성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