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윤의 무비레터]슬프지만 빛나는 '두근두근 내 인생'

2017-11-22 17:23



미라(송혜교)는 선청성 조로증에 걸려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 아름(조성목)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온몸으로 직감하고 국밥을 먹고 있는 남편 대수(강동원 분)에게 조금 더 아름이와 시간을 보내주라는 말을 건네며 울음을 터뜨린다. 한 가닥 희망의 말로 위로하는 대수에게 건넨 미라의 절절한 음성이다.

'두근두근 내 인생'은 김애란 작가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열일곱의 나이에 자식을 낳은 어린 부모와 선천성 조로증으로 여든 살의 신체 나이가 된 아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2011년 출간되자마자 3개월 만에 14만부의 판매부수를 기록해 그 해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된 김애란 작가의 '두근두근 내 인생'이 재탄생된 것이다. 어린 부모와 부모보다 더 빨리 늙어버린 아들, 생명을 갖은 후 이런 비극적인 일을 어떤 부모가 예상이나 했을까. 한 없이 슬플 것만 같은 이 이야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유쾌하면서 따뜻하게 그려져 세상 밖으로 나왔다.



체고 태권도부 헛발왕자 대수와 다섯 명의 오빠 밑에서 자란 아이돌을 꿈꾸는 미라는 부모가 되기에는 아직 미성숙해보이지만, 많은 고민 끝에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다. 이후 서른 세살이 된 미라와 대수 그리고 열 여섯 살이 된 아름. 선청성 조로증에 걸린 아름은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몸의 노화가 진행돼 아름은 하루 빨리 입원이 시급하지만 대수의 택시운전, 미라의 세탁공장 벌이로는 여의치 않다.

이런 아름의 낙은 책을 읽고, 소설을 쓰는 것이다. 아름은 '건강하게 자라기만 해도 기쁨'인 자식의 도리를 다 하지 못하는 탓에 언제나 부모님을 위해 '웃기는 자식'이 되고자한다. 아무리 철이 없는 어린 부모라도 대수와 미라는 나이답지 않게 어른스러운 아름이 안쓰럽기만 하다.

아직 한창 청춘인 서른 세살, 하고 싶은 것도 해야하는 것도 많은 나이이지만 부모이기에 포기해야할 것들이 많다. 그럼에도 "아름아, 네가 내 아들이라는 게 너무너무 좋다"며 아들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대수와 미라의 마음은 대한민국 부모의 마음을 대변해주며 공감을 일으킨다.

아들이 선물받은 게임기를 탐내고, 소녀시대라면 입꼬리부터 올라가는 철 없는 대수 역을 맡은 강동원은 그 동안 선뜻 다가갈 수 없게 만드는 신비스러운 이미지를 '두근두근 내 인생'을 통해 단 번에 바꿔놨다. 가장의 어깨에 얹어진 책임감을 부담으로 느끼지 않고 하루하루 열심히 아들을 위해 살아가는 '아들바보' 대수 역을 친근하고 소탈하게 소화했다. 눈물 연기 역시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자연스레 붉힌다.

"나 열일곱 살에 애 낳은 여자야"라는 레퍼토리를 읊고 다니는 씩씩한 엄마 미라 역의 송혜교 역시 성숙한 모성애 연기로 데뷔 후 처음으로 도전한 엄마 역할을 훌륭하게 연기했다. 아름을 지켜주기 위해 억척스러워졌지만 돌아서면 아름 생각에 눈물부터 나는 미라의 모습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엄마는 자연스레 떠올린다.



'두근두근 내 인생'을 통해 데뷔한 아역배우 조성목의 활약도 눈길을 끈다. 조성목의 담담하면서도 나이답지 않은 연기는 처음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 이재용 감독은 "눈이 아주 예뻤다. 눈으로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캐스팅한 이유에 대해 언급했다. 조성목은 한 번에 4~5시간 걸리는 특수분장으로 무려 31회차의 분량을 소화했으며, 80대의 얼굴로 성숙한 소년의 감정을 차분하게 연기했다.

원작을 읽지 않아도 무리 없이 영화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으며 슬프기만 할 것 같은 이 내용을 너무 무겁지 않으면서도 배우들의 감성연기를 한 껏 살린 이재용 감독의 연출이 친절하게 느껴진다. 흥행이 개봉 당시의 영화 성패를 가리는 잣대가 되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는 곱씹을 수 있는 영화가 영화의 또 다른 성패를 좌우한다.

따스한 햇빛과 온기를 불어넣어주는 영화 '두근두근 내 인생', 한 껏 차가워진 칼바람에 마음의 추위를 녹일 수 있는 영화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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