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이나의 맨 IN 무비 ]현대판 '소공녀'를 위하여

2018-06-27 20:54



[투비스 류이나 기자]'소공녀' 속 미소는 집만 없을 뿐 일도 사랑도 자신 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여자다. 미소는 사랑하는 애인과 담배, 위스키만 있다면 어느 곳이라도 좋다. 고달프지만 따스한 온기가 느껴진다. 그런 미소는 행복해졌을까. 질문은 관객들에게 넘어왔다.

미소는 일당으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인물. 집 값, 담배 값이 오르지만 월급은 그대로이자 집을 뺀다. 머물 곳이 사라진 미소는 대학교 시절 함께 밴드로 즐거웠던 시간을 보냈던 친구들의 집을 방문하며 도시 여행을 시작한다.

문영, 현정, 대용, 록이, 정화를 차례로 찾아간다. 대기업에 입사한 문영은 하루만 재워달라는 미소를 거절하지만 샐쭉이 웃는 미소에게 "여전하네"라고 긍정도, 부정도 알 수 없는 말을 던진다.

현정은 작은 연립주택에서 아직도 수험생인 남편과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있다. 현정은 자신이 동네를 "그지같지?", "결혼 안했으면 와보지도 않았을 동네"라고 여기며 자신의 처지를 웃으며 말하는 화통한 성격이다. 대학 시절 미소와 철부지처럼 어울리며 키보드도 잘치고 작곡에도 재능을 보였던 현정. 이제는 하루하루가 고단한, 잘하지 못했던 엄마에게 미안했던 유부녀 현정이 되어 있었다.

밴드의 막내 대용은 아내와 이혼하고 불면증에 시달려 술이 없으면 잠을 자지 못한다. 또 아파트 대출로 월급의 반을 지불하며 살아가는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었다.

록이는 노총각으로, 미소에게 "나랑 결혼할래?"라며 농을 건넨다. 이 농은 고스란히 미소에게 폭력으로 다가와 다시 집을 떠나게 만든다.

친하게 지냈던 언니 정미는 부자 남편을 만났지만, 눈치를 보며 살아 기를 펴고 살지 못한다.

친구들의 형태는 30대가 넘어가면 자연스레 찾아볼 수 있는 '우리' 혹은 '나의 친구'의 모습이다. 결혼, 취업, 집값 등으로 신음하는 N포 세대의 고충이 영화에 재치있게 녹아있다.

이들에게 온기를 건네는 건 오히려 집이 없어 떠돌이 생활을 하는 미소다. 미소에게는 주 3일 가사도우미란 직업이 있고, 담배와 위스키를 살 수 있는 돈이 있다. 또 무엇보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한솔이 있다. 자신의 취향을 포기하지 못해 집을 포기했던 미소. 현실적인 미소와, 비현실적인 친구들의 삶이 대조적으로 보여주지만 누구의 삶이 더 행복한지 전고운 감독은 저울질 하지 않는다. 또한 희망이나 꿈을 이용해 허투루 위로를 건네지도 않는다. 대단한 목표가 아닌, 미소가 건네는 밥 한공기, 차 한 잔, 추억의 사진, 응원하는 메모 등으로 우리를 위로 한다. 미소에게는 꿈을 꿀 여유보다는 현실을 잘 버티는 것이 꿈이다.

백발, 담배와 위스키, 가사도우미라는 설정은 미소의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만들어줬다. 백발은 미소를 스타일리시하면서 유니크하게 만들어주는 장치를, 또한 약을 먹는 건 주변의 모두가 다들 하나 씩은 가지고 있는 질병을 상징했다. 30대 여성의 가사도우미 직업은, 청소가 중요하고 없어서는 안될 일인데, 가치가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 설정했다.

담배와 위스키는 집을 포기할 정도로 가난하지만 고급스럽고 취향이 확고한 미소 캐릭터와 잘 어울린다고 판단했기 때문. 전고운 감독의 이같은 의도를 이솜은 100% 스크린에 살려냈다. 무심해보이는 이솜의 얼굴은 미소를 지을 때마다 더욱 따스하게 다가온다. 담배 살 돈은 있고 집에서 살 돈은 없는 미소를 밉지 않게, 이토록 비현실적인 캐릭터를 현실감 있게 그려낸 건 이솜의 발군의 연기력 덕분이다.

영화는 나이가 들면서 점점 포기하는 것이 많아지는 이들에게 좋아하는 것 쯤은 지키고 살았으면 하는 전고운 감독의 바람이 담겼다. 사회의 차가운 구조 속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온화하게 살아가는 '미소의 오늘'을 응원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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