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비스 인물탐험] 에리카헤어 권용은 대표, 뷰티 프랜차이즈 가맹 神이 되기까지...

2021-01-27 11:33


[투비스 황가람 기자]에리카헤어의 권용은 대표는 냉철한 사업가이자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열정맨'이다.

주식회사 에리카의 대표 권용은은 에리카헤어를 비롯한 에리카 컬러by두쏠(헤드 스파, 클리닉, 염색 전용 매장), 에리카 아뜰리에(인도네시아 원목의 경대 취급), 에리카클럽(여행사), 에리카 아카데미(미용 교육), 티로헤어살롱(에리카 아카데미 학생 전용 실습살롱), 베르비아(헤어 제품 생산 회사), 뷰티공인중개사 등의 여러 계열사를 운영하고 있다.

30살에 처음 홀로서기에 도전하며 오픈한 화곡역점 이가자 헤어비스는 말 그대로 ‘대박’이였다. 1년 후 역곡역에 동일 프랜차이즈를 오픈하여 ‘대박 행진’을 이어갔다. 거듭된 성공을 하던 그는 6개월 만에 기존의 지점 옆에 개인샵을 오픈했다. 결과는 참패였다.

1패의 충격은 그를 움직이게 했다. “나이가 30대 중반이 되어서 매장을 3개 정도 운영을 했어요. 회사 생활을 같이 병행 하다보니 두 마리 토끼 모두 놓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회사를 나가기로 했죠. 그리고 일본에 가서 나의 브랜드를 만들어 보자고 결심했어요”.

새로운 비상을 꿈꾸고 일본행 비행기에 오른 권용은 대표는 도쿄에 본점이 있는 ‘에리카 헤어’를 도약의 발판으로 삼았다. 그리고 2017년. 완정역점에서 에리카 1호점의 탄생을 알렸다.

에리카헤어는 빠른 시간 내에 몸집을 불려 나갔지만, 5호점이 넘어가는 시점에서 정체기를 맞았다. “저희 회사가 정체기가 왔을 때 하우현 부사장을 만났어요. 1년 전 부산 지사 설립이 인연이 되었죠. 부사장님의 도움으로 가맹점을 다달이 오픈해서 지금은 30호점을 훌쩍 넘겼어요”. 그의 인생에 또 다른 은인 하우현 부사장과 특별한 인연의 시작이었다.

“인생의 은인을 꼽자면 저를 믿고 함께 일해왔던 박준 선생님, 회사의 모토가 되어주신 이가자 선생님 그리고 하우현 부사장을 꼽겠습니다”.

사람이 먼저 와야 재물이 모인다고 했던가. 그의 사업의 뿌리와 성공은 모두 사람 간의 관계에서부터 시작했다. 권용은 대표의 아내도 박준 뷰티랩의 스탭 시절부터 알고 지내온 동료였다. 동료로 봐온 인연이 연인이 되고 지금 부부의 연을 이어가고 있다. 이 인연은 진귀한 결혼식 풍경을 만들어냈다.

“결혼할 때 박준 원장님이 주례도 해주셨어요. 신부 측엔 박준 사람들, 신랑 측엔 이가자 사람들이 한 데 모이니까 정말 신기했죠. 라이벌사끼리 이렇게 모이기가 쉽지 않은데 하하”

권용은 대표는 주변의 사람을 중요시 여기고 위하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왔다.

“19살때부터 미용을 하다 보니 미용인들이 짠하게 느껴져요. 하루 종일 서서 일하고 어디 해외로 나가본 시간도 없을 겁니다. 제가 한 번 해외를 나가보니까 너무 좋고, 그 경험을 직원들한테 선물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6년 전에 전 직원을 모두 다 데리고 태국을 갔어요. 비용은 모두 제가 냈습니다. 처음에는 복지 차원으로 기획했던 것이지만, 전직원과 함께한 태국 여행은 미용인 전용 여행사를 해보자고 마음 먹는 계기가 되었죠”.

지금은 코로나19 전염병 확산으로 주춤하고 있지만, 다시 재개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국제 상황에 맞게 그는 강원도 횡성에 펜션을 임대하여 복지 차원으로 미용인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방을 제공하고 있다. 심지어 지역 발전을 위해 무료 급식까지 추진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을 자선행사처럼 진행하고 있어요. 사실 돈을 벌려는 목적보다는 복지의 개념에 더 가깝죠”.
팬션임대와 지역발전을 위한 무료급식까지, 그의 다양한 활동은 수익사업이 사회를 위한 봉사로까지 이어질수 있음을 보여준다.

권용은 대표는 20년을 넘게 달려온 워커홀릭이자, 딸 하나 아들 하나를 가진 아버지이다. 자신이 겪은 가난을 아이들에게 되물려 주고 싶지 않아 열심히 일을 한다.

“바빠서 아이들을 거의 못 봐요. 제가 자라온 환경이 너무 어렵다 보니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지금도 커요. 아이들이 어릴 때 함께 했던 시간은 적지만, 크고 나면 아이들도 이해하지 않을까요”라며 씁쓸한 미소를 보였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의 아이로 자라온 권용은 대표는 진학할 돈이 없어 대학을 포기했고, 10대 때부터 생계를 걱정해야 했다.하지만 권용은 대표는 이제 말한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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