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아티스트] 최고가 되고 싶은 남자, ‘박승철헤어스투디오 안산홈플러스점’, ‘김 현’ 원장

2019-04-15 17:10 말하다



[투비스 김혜경 기자] 마주 앉아만 있어도 그 뜨거운 열정에 몸이 데일 것 같은 사람이 있다. 미용은 운명이었다고 말하는 박승철 헤어스투디오 안산홈플러스점 ‘김 현’ 원장이 그러하다.

“중학교 때 이발소에서 머리를 자르면서 미용이 나의 운명임을 깨달았습니다.”

단순히 머리를 맡기고 앉아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자신의 머리가 완성되어 가는지, 어떤 방법으로 자르는지를 유심히 보면서 자신의 머리를 직접 잘라보고 싶었다. 용돈을 모아 바리깡을 사서 자신의 머리를 직접 잘랐다. 그 후 면도칼로 머리를 잘라보며, 호기심 많던 사춘기를 미용이라는 울타리로 밀어 넣으며 시간을 쌓았다.

대학에서는 컴퓨터 관련 공부를 했지만 군 입대해 이발병을 하며 본격적으로 가위를 잡게 되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기본부터 시작한 이발병이었지만, 그의 실력은 소문이 났고, 그때부터였다. 전역하면 헤어 관련 일을 해 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

그러나 미용인이 된 결정적인 계기는 따로 있었다. 우리나라에 샤기커트와 왁스스타일링이 한창 유행하던 2000년대 초반,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다 미용인과의 대화에서 자신의 관심을 인정받은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미용을 본격 시작하고 바로 자신의 살롱을 오픈한 그는 많은 것을 배웠다. 짧은 시간에 오픈하고 접어서 경제적인 손실도 많았지만, 지금의 자신이 있기까지 운영이나 관리 부분에서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4개월 만에 미용실 문을 닫게 된 그는 부모님의 뜻대로 법무사 사무실에 취업, 소소한 일을 하게 되었지만, 역시 3개월 만에 정리하고 박승철헤어스투디오 안산홈플러스점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후 지금까지 자잘했던 자신의 역사를 뒤로하고 10년 동안 한길만을 묵묵히 가고 있다.


#운명이 만들어준 자리
헤어디자이너로 다시 가위를 잡게 된 그는 3년 안에 매출탑을 해야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2년 만에 그 목표를 이루었다.

“1년 동안은 고객을 쌓는다는 느낌으로 무리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그러다 보니 내방고객이 늘기 시작했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을 고객이 본 것 같다. ”

운도 따라줬다. 함께 일하던 점장이 자신의 샵을 오픈하면서 나가게 되고 그 빈자리에 자신이 올라가게 된 것이다.

그 당시 함께 일하던 디자이너들도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던 터라 처음엔 자신이 없었지만, 지금은 박승철헤어스투디오 직영점에서 매출상위권에 드는 미용실을 만들었다. 미용봉사단체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어찌 생각해보면 관계 설정이라는 것이 쉬운 것 같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이 굉장한 위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늘 새로움을 찾고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소소함들이 모이면 아름다운 세상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하루하루가 만들어내는 소중함을 위해 오늘도 열정을 쏟아 붓는다. 미용봉사단체도 그런 의도에서 만들게 되었다. 미용봉사단체인 ‘해피핸즈’는 요양병원 등을 찾아다니며 미용봉사를 한다. 15명 내외로 구성, 처음에는 안산에서만 활동했지만 지금은 다른 직영점과 함께 하고 있다. 추후엔 굿네이버스와도 함께 할 계획이다.”

봄도 피어오르기 직전의 그 기다림이 더 가슴 설레임인 것처럼, 그는 갓 봉오리 터지기 직전의 꽃 같은 마음과 설렘으로 하루를 소중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 그가 계획하고 있는 미래가 궁금했다.

“내게 열정이 빈곤해 지는 순간이야 말로 끝도 없이 퇴보하는 것임을 깨닫고 있다. 이젠 늘 꿈꿔 오던 것들에 대한 환상들을 현실 속에 정확하게 쏟아내는 작업들을 해야 할 시점인 것 같다. 개인 살롱에 대한 생각은 없다. 예전에 해봤기 때문에 지금은 욕심 없다. 지금 이 자리에서 성장한 것을 잊지 않고 있다. 한 자리에서 수석디자이너부터 점장과 원장까지 해봤다. 특히 본사에 만드는 제품에도 기술을 함께 했기에 여러 가지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즐거움과 행복을 찾고 있다.”

지금의 브랜드가 자신을 키워줬다고 생각하기에 어떤 좋은 기회가 있어도 의리를 지키고 싶다고 하는 그가 미용을 하면서 가장 많이 바뀐 것은 자신의 성격이다.

쑥스러움이 많은 내성적인 성격이었는데 미용을 하면서 매사에 적극적이고 명랑한 성격으로 바뀌었다. 미용사협회에서 시행하고 있는 일학습병행제에서 현장교수, 학습 근로자 부분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일본 미용실 원장들에게서는 장인의 숨결이 느껴진다. 몇 십년을 변함없이 가위를 잡고 있는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70살이 넘어서 미용대회에 출전한 한 원장을 봤다. 그 원장을 보며 오래도록 미용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미용실을 오래도록 운영하려면 경영과 기술,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한다.”

그는 가위를 잡을 수 있는 그날까지 고객을 받고 싶다. 할 수 있을 때까지 최선으로 움직이고 싶다고 말하는 그에게는 열정을 넘은 뜨거움이 있었다. 앞으로 그의 목표는 자신의 살롱이 전국 직영점에서 매출 1등을 하는 것이다. 지금은 전국 직영점 중에서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지만, 조만간 최고로 우뚝 설 것이라고 했다.

“무릇 한 분야의 최고 전문가는 자신의 분야를 문외한이 들어도 크게 어긋나지 않도록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사람들과 함께 하며 사람들 속에 부딪치고 넘어지며 좋아하는 일을 하고 함께하는 이들과 행복을 나눌 것이다. ”

어느 곳에 소속되어 있든 지금 일하고 있는 일터가 곧 내 것이며, 내 브랜드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일처럼 부지런히 움직여 동반 성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는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직원이 힘들 때는 자신도 힘들기 때문이다.

“나 혼자 즐겁고 행복할 수는 없다. 함께 일하는 모든 이가 즐겁도록 신경을 쓴다. 내가 싫으면 남도 싫은 것이기에 스스로 알아서 움직이고 있다. 업무분담을 명확히 해서 서로가 스트레스 안받고 일할 수 있게 한다. 최대한 자유로운 규율 속에서 일하도록 각별히 신경 쓴다.”

그에게 미용은 자신의 꿈을 이루게 해준 곳이기에 각별한 신뢰를 가지고 있다.


#최고가 되고 싶습니다

“일하면서 가장 행복한 일은 고객이 최고라고 엄지척 해줄 때다. 고여 있는 물은 썪는다. 공부하지 않고 정체되어 있다면 퇴보하는 것이다. 앞만 보고 일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꿈이 이루어진다. 한곳을 바라보고 묵묵히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내가 있는 이 곳에서 최고가 되고 싶다.”

즐거운 사람, 즐기는 사람, 즐거운 김현원장이라고 자신을 정의하는 그가 추구하는 삶은 행복이다. 어이없는 상황에서도 항상 즐거운 맘으로, 생활을 농담처럼, 웃으면서 사는 사람이다. 순발력과 임기웅변이 강해서 위기대처 능력도 뛰어난 사람이다.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온 그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했다.

“미용에서 성공하고 싶으면 일에 대한 열정과 직업의식, 미용기술 뿐 아니라 항상 덕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만의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미용사란 이름 석 자를 파는 직업이기에 신뢰가 중요한 직업이다. 무슨 일이든 책임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주변에 덕을 쌓아라. 어떤 경우라도 확실한 사람이 되라. 요즘 미용실은 예전처럼 돈버는 시스템이 아니다. 자신의 이름을 건 미용실을 오픈하는 이들이 많은데, 명예나 권위로 원장을 하지마라. 원장 직함의 명예는 잠깐이다. 진짜 중요한건 관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진짜 미용을 사랑하고 미용실을 운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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