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인] 함께 가는 삶이 최선의 삶이다, ‘토니앤 가이’ 홍제점 ‘엄기억’ 원장

2018-11-13 13:13 말하다



[투비스 김혜경 기자] 결이 곱지만 터프하고 대범한 아내와 와일드하지만 섬세한 남자가 만나 부부가 되었고, 아내 복이 많다는 소리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듣고 사는 한 남자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하며 산다. 토니앤가이 엄기억 원장은 아내 복이 많은 남자다. 남들이 인정하고 스스로도 인정한다.

한동안 어느 행사나 어느 모임자리에 가면 빠지지 않고 꼭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있었다. 미용실을 지키지 않고 밖으로만 도는 그를 보고 우려에 섞인 걱정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남들 소리와 걱정에 연연해하지 않고 그가 자신감 넘치게 외부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건 아내의 힘이었다. 남눈치 보지 말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는 아내의 말은 그에게 큰 힘이었다.

그의 아내 김혜진 원장은 서비스강사 출신으로 메이크업아티스트이기도 하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남편이 원하는 대로 하고픈 대로 할 수 있게 자리를 만들어주고 배려해주려 애쓰는 사람이다. 그 덕분에 엄기억 원장은 하고픈 일을 하며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쁘고 착하다. 어른들을 잘 공경한다. 자신을 사랑하고 봉사정신도 투철한 사람이다. 보기엔 차갑게 생겼는데, 보기완 다르게 속이 따스하다. 새벽에 나가서 교육을 하고 미용 비즈니스도 잘한다. 늦은 나이에 공부도 즐기는 사람이다. 지금도 끊임없이 배우고 투자한다. 뿌린만큼 거둬야 한다. 움직이지 않고 수확하기만을 원하면 안된다. 아내는 늘 솔선수범한다. 그러면서도 부지런하다. 배울게 많은 사람이다. ”

아내에 대한 질문에 엄기억 원장은 팔불출이 된다. 함께를 강조하는 그에게는 내실을 튼튼히 하고 함께 한 방향을 바라보며 나가는 아내가 고마울 뿐이다. 살롱의 비즈니스와 경영에 관한 것은 아내가 맡았고, 엄원장은 살롱워크를 책임진다.


#서른에 꿈을 이루다
노는 것만 좋았던 중고교시절, 제빵자격증을 취득했지만 정형화된 의상이나 근무 조건이 너무 자신과 맞지 않았기에 다른 일을 선택 한 것이 미용이었다.

워낙 꾸미길 좋아하고 보헤미안 기질이 있던 그에겐 딱 어울리는 선택이었다. 박준뷰티랩에서 시작, 자신의 개인 살롱인 브로스 헤어를 오픈한 건 2002년, 그의 나이 서른이 되던 해였다. 30살에는 자신만의 차별화된 살롱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만의 컬러를 가진 차별화된 살롱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앞섰고, 답답하고 획일적인 규제를 떠나 독창적인 나만의 공간을 갖고 싶었다. 남 눈치 안보고 서로에게 구애 받지 않는 인간적인 냄새가 나는 살롱을 하고 싶었다.”

“브로스 헤어 살롱을 10여 년 전에 5개점을 운영했는데, 운영과 경영미숙으로 더 확장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지 못했다. 준비 없이 만들어진 기회였기에 놓친 것 같다. 그 후 여러 가지 생각도 많았지만, 이젠 양보다는 질로 승부하려 한다. 작더라도 알차고 실속 있는 운영과 삶도 마찬가지로 그리 하고 싶다. ”

브로스 헤어가 개인 살롱 브랜드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에 10여 평 짜리 공간에 손님이 항상 가득했다. 멀리서부터 찾아와주는 고객들에로 인해 행복하기만 했다. 그때 그는 결심했다. 지속적인 공부로 자신을 찾아오는 고객에게 항상 기쁨을 주기로 했다.

아내와 남동생 그리고 자신, 이렇게 셋이 시작한 브로스 헤어는 번호표 뽑고 기다릴 정도로 사람이 많을 정도로 인기 있었다. 꾸준한 공부가 고객들에게 인정을 받은 것이다. 작고 소탈한 살롱이었지만 손님들의 사랑을 받고 자랄 수 있었다.


28년 미용외길을 달려오는 동안 그는 생각도 많았고 잡념도 많았다. 그때마다 큰 길이 되어준 아내가 너무 고마울 뿐이다.

2010년, 그는 프랜차이즈 살롱으로 눈을 돌린다. 브로스 헤어라는 개인 타이틀을 벗고 토니앤 가이와 제오헤어를 연이어 오픈한다.

“함께 성장하고 발전하는 직원들에게 대접받고 따뜻하게 살 수 있는 흔들리지 않는 미용실을 만들고 싶다. 교육과 꿈을 심어주고 싶다. 기본이 되어 흔들리지 않는 과정으로 만들어 가고 싶다. 우리 모두 다 함께 같이 가고 싶다.”

#조금 더 넓은 세상으로
외부로만 돌던 그가 다시 살롱으로 돌아왔다. 물론 그동안 살롱을 접은 건 아니었지만, 이젠 외부활동보다는 내실을 기해야겠다는 생각에서다. 일을 떠나서는 얻을 수 없는 행복이 그의 가위 속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고객에게 이미지 변신을 시켜주고 그에 대한 즐거움을 주는 것이 행복하다. 단순히 사람이 좋아서 자신이 해준 스타일을 맘에 들어 하지 않는다면 가격도 고객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한다. 자신이 커트에 그만큼 충분한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자신감이 넘치기 때문이다.

“머리를 시술받고 감사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 하나라도 더 고객에게 해 줘야 겠다는 마음이다. 사람을 만나서 함께 하고 함께 나누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제일 행복하다. 내가 고객을 예쁘게 변신시켜주고 고민을 함께 풀어주고 치유해주는 이 희열이 너무 좋다. 그래서 이젠 살롱을 중심으로 다시 움직이려고 한다.”

그는 주말이면 산에 오르고 주중에는 오토바이인생을 즐긴다. 자동차보다 오토바이의 바람을 즐기는 그는 출퇴근을 오토바이로 할 정도로 늦게 시작한 할리의 사랑이 대단하다. 미용실에서 억압보다는 즐기면서 라이프 생활을 즐기려는 의미에서다.

그의 의상은 평소에도 오토바이 족이었다. 오토바이를 타기 전부터 그랬다. 오토바이 타냐는 소리를 하도 많이 들으니 어느새 오토바이에 대한 로망이 생겼다. 도전해보리란 마음이 든 순간 그날로 가서 오토바이 자격증을 땄고 오토바이에 익숙치 않은 상황에서 할리를 한 대 샀다. 물론 아내의 동의를 구하고 내린 결정이었다. 아내는 그런 사람이다. 남편의 의견을 존중하고 잘 들어주는 그런 여자다.

“80살이 될 때까지 미용실에서 일하는 것이 꿈이다. 아직까지도 부족한 것들이 많고 늘 갈증이 나기에 열심히 움직인다. 테크닉과 기본에 테크닉을 가미한 퍼포먼스가 있어야 한다. 미용인에 대한 폄하를 없애고 싶다.”

그는 가슴에 일본 헤어디자이너이며 그의 롤 모델인 피카부 사진을 늘 품고 다닌다. 상징적으로 살고 싶다는 그에게 피카부는 자극을 주고 다독여 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 사진=거울에 고객의 이름을 적고 시술을 시작한다. 사진은 고객의 이름을 적고 있는 엄기억원장

“미용을 하는 후배들이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교육이다. 무조건 공부만이 답이다. 또한 서로 사랑하고 믿어야 한다. 특히 직원과 원장과의 믿음은 서로에 대한 관계성 회복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문제다. 서로 상생하고 발전하는 미용계가 되었으면 좋겠다. 누구에게나 기억될 수 있는 본보기로 살고 싶다.“

아직은 대표보다는 원장소리가 더 듣기 편하고 좋다는 그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가 ‘함께’ 이듯, 모든 이들과 함께 삶을 즐기며 나가는 것을 추구한다. 아직은 아티스트며 쟁이로서 역할에 충실하고 싶다는 그는 앞으로 필드에 더 전념하며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했다.

사람에게 어떤 부분에 대해 인정받는 다는 것은 진짜 그렇다는 말이다. 그는 스스로를 재미있고 의리있는 사람이라고 칭한다. 실제로 주변에서도 그를 그렇게 인정한다. 인간미 넘치고 따스하고 한편으로는 정의감이 넘치지만 유머러스한 성향에 늘 웃음을 주는 그런 사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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