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브랜드탐구] ‘샤넬 넘버파이브’, 전설의 시작

2018-07-15 12:36 입다

▲ (사진=샤넬 공식 홈페이지)


[투비스 이재언 기자] 트렌드가 생명인 패션 세계에선 발 빠른 유행에 대한 민감한 대처력이 중요하다. 그러나 속수무책으로 변화하는 트렌드를 민첩하게 따라잡을 자신이 없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클래식’을 택하는 것이다. 트렌드는 변하지만 ‘클래식은 영원하다’. 패션의 오랜 역사 속에서 탄생하고 운명을 달리한 브랜드는 셀 수 없이 많지만 개중에도 고전의 자리를 지키며 존재감을 자랑하는 브랜드들 역시 존재한다. 존재 자체만으로 패션의 정체성이 되어주는 브랜드들을 찾아 그 오랜 역사와 노하우를 탐구해 보자.

오늘의 클래식은 샤넬의 ‘넘버파이브’(No.5)다.



1921년, 여류디자이너가 최초로 자기만의 향수를 만들어 고급스런 향수업계에 혁명을 일으켰다. 코코샤넬의 넘버파이브가 바로 그 주인공. 그가 추구한 것은 ‘여성의 향기가 나는 여성의 향수’였다. 코코샤넬은 “여자의 향기는 여자의 스타일만큼 중요하며 여자는 사랑을 받고 싶은 곳에 향수를 뿌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샤넬의 대표 향수를 제조하기 위해 러시아 황제의 조향사 에르네스트 보를 만났다. 샤넬은 에르네스트 보가 더욱 대담하게 실험을 진행할 수 있도록 격려했고, 에르네스트 보는 영감을 얻기 위해 북극권을 넘어 백야 아래의 북극 호수를 찾아가는 등 험난한 시간들을 거쳐야 했다.



그 결과 넘버파이브는 한 가지 꽃향기만으로 향수를 제조하는 관습을 깨뜨리는 데 성공했다. 추상적이고 신비로운 향을 자랑하는 넘버파이브는 5월의 장미, 일랑일랑, 백단향, 오렌지 꽃 등 풍부한 꽃들의 향기를 발산한다. 넘버파이브가 이러한 향 배합의 연금술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에르네스트 보가 혁신적으로 사용한 알데히드 덕분. 알데히드는 향에 섬세한 느낌을 더하며 넘버파이브를 더욱 신비롭게 만들었다.

넘버파이브라는 향수의 이름은 당시의 감상적인 이름을 뽐내던 다른 향수들을 갑자기 촌스럽게 만들었다. 이 이름은 에르네스트 보가 샤넬에게 제시했던 다섯 번째 샘플을 샤넬이 선택하게 되며 붙여졌다고. 실험실용 형태를 띤 넘버파이브의 향수병 역시 1920년대의 화려한 향수병들과는 무척 차별화된 디자인이었다. 단순하고 순수하며, 엄격한 듯 보이는 넘버파이브 병의 심플함은 시간을 초월한다.



1937년 코코샤넬은 리츠호텔에서 하퍼스 바자를 위해 본인이 직접 포즈를 취하는 새로운 형식의 광고를 시도했다. 처음으로 슈퍼볼 결승전에 향수 CF가 방영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넘어파이브의 전설이 시작된 본격적인 계기는 1952년 최고의 스타로 자리 잡은 마릴린 먼로가 “넘버파이브 몇 방울만 입고 잔다”는 발언을 하면서부터였다.

이렇게 넘버파이브는 20세기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이 향수는 1959년 뉴욕 MOMA에 전시됐고 앤디워홀은 넘버파이브를 실크스크린으로 묘사했다. 1921년 처음 탄생한 이 향수는 오늘도 세계에서 베스트셀러이며 가장 유명한 향수 중 하나다. 넘버파이브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유행과 시간의 흐름에 영향을 받지 않는 클래식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시대를 넘어서도(timeless) 여전히 시의에 맞는(timely) 클래식이란 이름의 무게는 넘버파이브에야말로 걸맞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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